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1, 5절)
본문의 시인은 고라 자손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성가대원이나 문지기 혹은 어떤 일에 수종 들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성전이 그의 삶의 터였지만 지금은 성전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릅니다. 피치 못할 이유로 답답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슬픔과 낙망,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 마음의 상함과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시인은 이런 것들에 짓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는 우리는 이 시인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면은 본문의 시인보다 더 절망적이지 않는지요?
부름 받은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쫓기듯 살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스트레스라는 단어만큼 우리 생활을 특징짓는 것이 있습니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심지어 유치원 어린이까지도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압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기대치가 머리를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학위나 경력, 대인관계, 건강과 미모, 인기 등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성공이 우리의 삶을 휘몰아가고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 오히려 목표에 끌려다니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으로써 내면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려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 영혼이 갈망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탄식 중에 놀라운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내던지는 모험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절)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던져라! 그러면 하나님이 살려주신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비결입니다.
여전히 불안과 의심이 자리잡고 있을 때 우리도 본문의 시인처럼 하면 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던져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것입니다.